부모의 재력과 능력이 좋아, 아무 노력 없이도 풍요롭게 살 수 있는 자녀들을 ‘금수저’라 부릅니다.
연예계에도 타고난 금수저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되지만 외모나 이미지 또한 그가 맡는 배역들을 보면 전혀 금수저라고 생각이 안되는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
배우 김민교가 대표적인데요.
코믹한 연기를 주로해 그가 개그맨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김민교는 1974년생으로 1998년 영화 <성철>로 연예계에 입문했습니다.
극단 활동과 연극과 영화에서 활동했지만 이름과 얼굴을 알리지는 못했는데요.
그러던 중 <SNL 코리아>에 출연해 그간의 무명 인지도를 단번에 날려버리고 확실한 인지도와 인기를 얻게 됩니다.
특히 그는 눈빛 연기가 탁월한데 동공연기로 사랑 받아왔으며, 실제 안구보험 제의까지 받았을 정도라고 합니다.
극중에서 매번 억울하게 당하는 역할 등을 주로 맡아오던 그가 사실은 금수저라고 합니다.
그는 어린시절에 대해 “사실 돈 걱정 없이 살았다”며 고백했는데요.
김민교의 아버지는 MBC 지정 병원이었던 경기도 광주의 ‘동아종합병원 병원장’으로 서울의 어지간한 종합병원보다 크고 유명했다고 합니다.
그가 어릴적 살았던 집은 1500평 가량이었으며, 집안에 수영장이 있을 정도 였다고 합니다.
수영장이 딸린 대저택에 살았던 김민교는 대학가면 말을 사 달라고 했는데 사주셨고, 그레이 하운드를 키우고 싶다고 하니 국내에 1~2마리 밖에 없는 개를 구해주기도 하셨다고 합니다.
어릴때부터 개를 좋아했던 김민교를 위해 30마리의 개를 키웠으며, 개를 돌봐주는 사람, 집사, 정원사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짜장면이 500원하던 시절 김민교의 하루 용돈은 1만원이었다고 하는데요.
지금 물가로 계산하면 최소 하루 용돈이 10만원은 되는 것으로 보아 그의 집안이 얼마나 풍족했는지 짐작케 합니다.
하지만 이미지는 지금과 비슷했던 것 같은데요.
김민교의 서울예대 연극과 출신 동기였던 임형준은 한 방송에 나와 양복을 입고 온 김민교를 보고 외국인 전형으로 왔다고 생각했을 정도하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김민교 덕분에 강남을 처음 가봤고, 비스킷이라는 것도 처음 먹어봤다고 고백했습니다.
학창시절까지 넉넉하게 돈 걱정 없이 살았던 김민교는 아버지가 큰 사기를 당하면서 그의 집안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부자가 망해도 삼대는 간다’는 말이 있지만 어찌나 큰 사기를 당하셨는지 집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살던 집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모든 재산은 경매에 넘어갔고, 아버지는 도망을 다녀야했고, 어머니는 식당에 나가셔서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민교는 생활고 때문에 군입대를 결정하게 되었고, 첫 휴가를 나왔는데 아버지가 스님이 되었다고 합니다.
너무 큰 사기를 당한 나머지 병원장까지 지냈던 아버지가 스님이 되고 만 것인데요.
김민교는 아버지를 찾아갔지만 아버지는 “스님이 되었으니 더이상 아버지라 부르지마라. 보고싶으면 가끔 보러오라”며 단호하게 말했고, 김민교는 큰 충격을 받아 아버지와 연락을 끊었다고 합니다.
김민교는 아버지를 안보려고 다짐했지만 아버지가 췌장암 말기라는 소식을 전해듣고 매일매일 아버지를 찾았다고 하는데요.
아버지를 매일 찾아뵙기 위해 사찰 가까운 곳으로 이사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번듯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형편이 어려워 무리하게 빚을 내서 잘 사는 모습까지 보여드리기도 했는데요.
김민교의 지극한 효심 덕분인지 3개월을 넘기기 힘들다 말했던 아버지는 3년을 넘게 사시다가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한편 김민교는 지난 2020년 경기 광주에 위치한 자신의 집에서 키우던 대형견 2마리가 울타리를 넘어 인근에서 농사일을 하던 80대 할머니를 물어 중상을 입히는 사고를 입혔습니다.
이에 김민교는 사과문을 게재하고 사고를 시인했으며, 피해자 가족측에서도 “김민교 씨가 여러 오래를 받고 있어 오히려 마음이 쓰인다. 그러지 않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저희 엄마도 김민교 씨는 물론 와이프와도 이웃으로 잘 지내고 있었다. 김민교는 방관하는게 아니다. 사실이 제대로 알려져 활동을 잘 했으면 좋겠다”며 밝혔습니다.
이후 피해자는 중환자실에 입원에 2개월간 여러차례 수술과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사망하였습니다.
이후 김민교는 금고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으며, 항소하지 않아 판결은 그대로 확정되었습니다.
김민교는 “있어서는 안 될 사고가 발생했다. 견주로서 책임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며 입장을 밝혔습니다.